남녀를 불문하고 콘돔이 제한하는 성감을 가장 최소화하는 스펙은 아무래도 ‘두께’입니다. 따라서 콘돔시장은 더욱 더 얇은 콘돔을 개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왔죠. 실제로 폴리우레탄을 사용한 0.02mm 대의 콘돔이 개발되기 전까진 라텍스 소재의 한계라는 0.03mm가 초박형 콘돔(두께가 얇은 기능성 콘돔)의 상징이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OKAMOTO 사의 Zero Zero Three(a.k.a. 003)시리즈가 있습니다. 네이밍에서부터 두께에 대한 자부심이 한껏 풍겨나오는 이 제품은 국내에서 아마 가장 많이 소비되고 선호되는 제품 중 하나일 텐데요, 세련된 디자인에 얇은 두께를 강점으로 내세워 편의점에서부터 온라인몰까지 베스트셀러 상품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003은 정말로 0.03mm일까요?

콘돔을 구매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콘돔의 외곽에는 길이와 폭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있어도, 두께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게 제시되어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두께에 대한 정보는 구매를 유도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 대신에 제품명에 그 두께를 암시하는 숫자를 포함시킴으로써 초박성을 강조하는 제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예로는 오카모토 003 시리즈, 오카모토 하이드로 002, 사가미 오리지널 002, 한국라텍스 페더 002, 한국라텍스 마이크로 002, 바른생각 0.02 Air Fit, 중외신약 슬림 프리미엄 001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다들 어련히 0.03mm려니. 0.02mm려니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콘돔은 법적으로 의료기기에 해당되며 따라서 의료기기법을 따라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의료기기법에 의거하여 제조업자, 혹은 수입업자는 반드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을 받아야하고 그 과정에는 해당 의료기기의 품질에 대한 기준이 필요한 항목에 따라 제품에 대한 정보가 신고되어야 합니다. 콘돔의 경우 신고사항에는 규격이 필수적으로 들어가게 되죠. 법적으로 승인받은 정보이니만큼 가장 정확도가 보장되는 출처라고 볼 수 있는데요, 식약처에 등록되어 있는 정보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정보는 꽤나 큰 차이를 보입니다. 몇가지 예시와 함께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SAGAMI Original 002 & OKAMOTO Hydro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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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사가미 사의 002는 국내에서 현재 판매되고 있는 제품 중 가장 얇습니다. 기존의 라텍스 콘돔과 달리 폴리우레탄 소재를 사용하여 더 얇은 두께로도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0.02mm라는 암시적 수치는 과장된 경향이 있습니다. 식약처에 따르면 사가미 002의 실제 두께는 0.028±0.01mm입니다. 0.02mm대는 달성했으나 제품 겉면을 봤을 때 소비자가 떠올렸을 수치에는 미치지 못하죠. 국내에서 유통판매되는 콘돔 중에서는 단연 최고의 얇기이긴 합니다.

오카모토 하이드로 002의 경우도 유사합니다. 업계 최고를 달리던 오카모토 사는 사가미 사의 사가미 오리지널 002의 등장으로 위협을 받았는지 본진인 라텍스 소재를 넘어 폴리우레탄 소재의 극초박형 콘돔을 제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내놓은 제품이 오카모토 하이드로 002인데요, 이 콘돔도 상품명으로 0.02mm라는 인식을 심지만 실제 두께는0.028±0.003mm입니다. 사가미 사의 제품과 비교했을 때에도 오차범위가 조금은 더 크죠.

 

2. OKAMOTO 003 series(003 platinum, 003 Real Fit 등)image17

두께를 암시하는 제품명을 통하여 인지도를 굉장히 많이 높힌 오카모토 003 시리즈의 경우, 제품 구매시 외곽에는 두께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으나 ‘003’이라는 수치가 이름에 포함되어 0.03mm의 초박형 콘돔이라는 인상을 자연히 줍니다. 그러나 식약처에 신고된 정보에 따르면 실제 두께는 0.042±0.007mm입니다. 평균두께는 애초에 0.03mm대에 속하지도 않으며 오차 범위내의 최소치조차 0.035mm에 불과합니다.

 

3. 바른생각 0.02 Fit, 한국라텍스 Feather 002, 한국라텍스 Micro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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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좋은 취지에서 하는 ‘바른생각’ 브랜드이지만, 콘돔에 대한 바른생각을 하기 전에 소비자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판매자로서의 바른 생각을 좀 더 할 필요가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명칭 자체에 이미 ‘0.02(영쩜영이)’라는 소수점에 포함된 숫자를 제시했으니 이건 여타 제품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당 제품이 0.02mm임을 소비자에게 암시하여 초박성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0.02라는 숫자 앞의 소심한 ‘-‘는 책임회피를 의도한 것인지 뭔지 알 수가 없네요). 그러나 형명 p-type으로 식약처로부터 허가받은 이 제품의 두께는 무려0.07±0.02mm. 애초에 0.02mm에는 근접하지도 않습니다. 오차범위를 고려하더라도 수치적으로 위의 두 예시보다 훨씬 더 큰 격차이며 초박형 콘돔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두꺼운 콘돔에 해당됩니다. 실제 두께와는 차이가 있는 002라는 암시적 수치를 제품명에 포함시킴으로써 소비자의 구매를 그릇된 방법으로 유도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바른생각 0.02 Air Fit은 한국라텍스에서 제조되는 콘돔으로, 한국라텍스 자사의 제품인 Feather 002와 Micro 002와 사실상 동일한 제품입니다. p-type이라는 공통된 명칭으로 식약처로부터 제조허가를 받은 콘돔으로는 한국라텍스의 Feather 002, Micro 002 외에도 코로넷 울트라씬, 퍼펙트 제로 등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내용물인 콘돔 자체는 동일하지만 브랜딩과 제품명만 다르게 기재한 것입니다.)

‘아이 뭐, 대충해. 어쨌든 다른 것보다는 얇잖아’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죠. 그러나 이 암시적 수치를 이용한 마케팅이 법에 일부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콘돔은 의료기기법을 따릅니다. 002, 003과 같은 숫자를 상품명으로 기재했을때 문제가 될 수 있는 의료기기법 하의 법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24조(기재 및 광고의 금지 등) ① 의료기기의 용기, 외장, 포장 또는 첨부문서에 해당 의료기기에 관하여 다음 각 호의 사항을 표시하거나 적어서는 아니 된다.
1. 거짓이나 오해할 염려가 있는 사항
2. 제6조제2항 또는 제15조제2항에 따른 허가를 받지 아니하거나 신고를 하지 아니한 성능이나 효능 및 효과
3. 보건위생상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사용방법이나 사용기간
② 누구든지 의료기기의 광고와 관련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광고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개정 2013.3.23.>
1. 의료기기의 명칭·제조방법·성능이나 효능 및 효과 또는 그 원리에 관한 거짓 또는 과대 광고
2. 의사·치과의사·한의사·수의사 또는 그 밖의 자가 의료기기의 성능이나 효능 및 효과에 관하여 보증·추천·공인·지도 또는 인정하고 있거나 그러한 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할 염려가 있는 기사를 사용한 광고
3. 의료기기의 성능이나 효능 및 효과를 암시하는 기사·사진·도안을 사용하거나 그 밖에 암시적인 방법을 사용한 광고
4. 의료기기에 관하여 낙태를 암시하거나 외설적인 문서 또는 도안을 사용한 광고
5. 제6조제2항 또는 제15조제2항에 따라 허가를 받지 아니하거나 신고를 하지 아니한 의료기기의 명칭·제조방법·성능이나 효능 및 효과에 관한 광고. 다만, 제26조제1항 단서에 해당하는 의료기기의 경우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정하여 고시하는 절차 및 방법, 허용범위 등에 따라 광고할 수 있다.
6. 제25조제1항에 따른 심의를 받지 아니하거나 심의받은 내용과 다른 내용의 광고
③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의료기기의 표시·기재 및 광고의 범위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총리령으로 정한다. <개정 2013.3.23.>

소비자는 제조사로부터 명시적으로 제공되는 두께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콘돔을 구매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의료기기의 포장에 가장 크게 실리는 제품명이 사실과 다른 정보를 암시한다는 것은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방해합니다. 얇고 굵고가 핵심이 아니라 소비자를 속인다는 것입니다. 물론 단순 제품명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암시적 수치를 굳이 제품명으로 선정한 명확한 이유 없이는 과대 광고의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최근에 국내 과자가 과대포장으로 소비자를 우롱해온 실태가 대대적으로 밝혀져 많은 논란을 빚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기호식품에 해당되는 과자조차도 이제는 제조업자로써 양심적 생산을 할 것을 요구받는 요즘, 생명의 잉태와 국민의 건강한 성에 직결되어있는 콘돔을 다루는 의료기기 회사들이 단순 마케팅을 위해 해당 제품의 성능 및 효과에 대하여 오해할 여지가 있는 제품명을 의도적으로 선정하였다는 것은 특히 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에 대한 바른 생각을 도모하기 이전에 판매자로서 소비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길.

글쓴이

EVE

안녕하세요? 건강과 자연을 생각하는 이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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