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존재 목적은 궁극적으로 평화로운 공존과 조화에 있다. 개인·집단·국가 간 갈등을 예방하거나 합리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함이며, 반드시 지켜져야 할 사회구성원 간의 약속에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라도 법이 인간의 권리를 우선해서는 안된다.

법은 한 사회가 규정한 입법 절차만 거치면 어떻게든 발의되고, 그 효력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속해있는 민주주의가 객관적이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 그 시스템의 취약성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 법이라는 합의 체계를 구성한 이후로 만들어진 수많은 악법의 사례를 알고 있다.

법은 쉽게 바뀌어선 안되지만, 그 법으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 받고, 고통 받고, 버림 받는다면 그 법은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여성가족부 고시 제2013-51호 (a.k.a. 쾌락통제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는 이유다.

무엇으로부터 보호하는가

헌법소원

   2012년 <청소년유해환경접촉종합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0대의 첫 성관계 연령은 15.1세, 성관계를 통해 임신을 하거나 하게 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전체 성관계 경험자 중 24.1%로 1/4 수준에 달했다. 2014년 동일보고서에서도 피임을 하는 청소년은 39%에 그쳤고,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 청소년의 66% – 학교 밖 청소년의 경우에는 무려 79.1% – 가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선택했다. 인공임신중절수술이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청소년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어려움을 견뎌내며 그 수술을 받았을지는 한없이 막연하고 절망적이다.

이들 중 71.6%는 이미 성교육을 받았다고 응답한 청소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고, 피임 없는 성관계는 원치 않은 임신으로, 원치 않은 임신은 인공임신중절수술로 이어졌다. 그것이 청소년을 성으로부터 격리하려는 현행이 낳은 결과이다.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은 피임교육을 중학교 시기부터 시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나, 결국 자교의 학생들에게 어떤 성교육을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재량은 각 교장에게 있기에 표준안은 사실상 아무런 강제력이 없다. 그래서 모든 학생이 공통적으로 받는 성교육이라 해도, 그 내용이 상이할 수 밖에 없다.

성교육이 피임을 포괄하지 못한다면, ‘노콘노섹’이라는 성인에게도 아직 통용되지 못하는 상식을 청소년기부터 가르치기가 그렇게 꺼림칙하다면, 적어도 피임에 대한 접근성은 있어야 한다. 이는 가장 소극적인 보호이면서도 가장 근본적인 권리의 보장이다. 콘돔이 필요한 사람이 콘돔을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성관계를 장려하는 것과 다름을 알아야 한다.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성관계를 할지 말지의 선택은 결국 온전히 그 개인의 몫이다. 다만 선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보가 충분해야 한다는 것이고, 안전한 선택이 너무 어렵거나 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보호법 하위 항목이자 청소년의 콘돔에 대한 접근성을 저해하는 유일한 법적 근거로 작용하는 여성가족부 고시 제 2013-51호는 아무도 보호하지 않는다. 인터넷에 ‘길거리’만 검색해도 포르노그라피와 다를 바 없는 이미지들이 즐비한데, 콘돔이 유해하다는 20년 전 청소년보호위원회의 결정은 대체 누구를 무엇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은 “아니 그래도 청소년이 섹스라니…”라는 감상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발현되면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 뿌리 깊은 불편이, 10대의 섹슈얼리티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그 막연한 경향성이, 청소년과 성(性)을 같이 두지 못하는 보수성이 청소년을 안전한 성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다.

무엇이 유해한가

청소년의 콘돔 사용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유일한 근거인 여성가족부 고시 제 2013-51호는 청소년유해물건을 명시하는 고시이다. ‘청소년의 심신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제품들을 유해물건으로 지정함으로써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명백히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것’으로부터 청소년을 격리하는 것이 본 고시의 목적이다. 1997년도에 처음 고시되어 2011년, 2013년에 두 차례 수정된 해당 고시가 지정한 유해물건 목록에는 돌출형 콘돔과 사정지연형 콘돔이 포함되어 있다. 이 콘돔들은 모두 식약처에서 안전성 심사를 거치며, 엄연히 의료기기로 분류되는 제품들이다.

실제로 고시 제정 당시(1997년) 소집된 청소년보호위원회와 전문의료인들이 참고한 자료 <성기구에 대한 전문가 검토의견> 원문을 살펴봤다. 전문가 의견 중에는 ‘품질 보장이 되어있지 않다’, 재질안전성 등의 검증이 필요하다’, 등 안전성에 대한 우려와 의학적 접근의 필요성을 표명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점들은 이미 식약처를 통해 검수되고 있었다. 3등급 의료기기로 분류되는 콘돔은, 안전성/유효성/임상실험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심사를 통과해야만 정상적으로 품목허가를 받을 수 있으며 합법적 판매가 가능해진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모든 특수콘돔들은 보따리 장수가 밀반입한 것이 아닌 이상 모두 의학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임상실험이나 사례적 근거 없이 ‘조루증환자’ ‘여성성기피부상흔’ ‘남성음경괴사유발’ 등 자극적인 언어를 통하여 그 유해성을 단언하는 이 자료를 토대로 해당 고시는 그 이후로 20년간 쭉 유효했다.

* 신기한 것은 97년도의 고시가 2011년에 처음 개정되면서 ‘약사법에 의거한 의료기기가 아닌 제품들’이라는 문구가 갑자기 빠졌다는 점이다. 의학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가, 알고보니 전부 다 의학적 검토를 거친 제품들이어서 그 말을 쏙 뺀 것일까?

‘쾌락통제법’의 역기능

처음 해당 고시가 제정되었던 1997년도는 사실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는 고사하고, 청소년의 인권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비한 시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이 ‘필요 이상으로’ 성에 노출되는 것에 극도로 민감했을 것이다. 실제로 <성기구에 대한 전문가 검토의견>에도 ‘청소년의 정상적인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성에 대한 그릇된 학습을 조장한다’ ‘ 성의 자극적인 감각만에 탐닉할 수 있다’ 등의 이유가 유해물건 지정사유로 등장한다.

그러나 일부 콘돔에 대한 제한은 콘돔이라는 피임도구 자체에 대한 접근성을 온/오프라인 전반에 걸쳐 제한하는 심각한 역기능을 초래하였다. 일반 콘돔의 경우 청소년도 구매에 대한 제한이 없으나, 법적 근거와 무관하게 현실에서는 편의점/드럭스토어/약국에서의 판매거부, 신분증 요구 등으로 이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청소년의 안전한 사랑을 막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자, 콘돔을 ‘성인용품’으로 각인시켜 성인이 된 이후의 성(性) 인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대형 포털들이 온라인에서 ‘콘돔’이라는 의료기기를 성인키워드로 분류하여 검색 결과를 제한하는 근거가 되었다.

해당고시를 기반으로 대형 포털들은 행정적 용이함, 비용의 절감 등을 이유로 성인인증 없이는 콘돔의 사용법, 구매처, 종류 등 피임에 필수적인 정보들을 열람할 수 없는 생태계를 조성하였다. 특히 인터넷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10대는 학교에서 받는 성교육이 부족한 만큼, 정확한 피임에 대한 온라인 상의 접근성이 더욱 더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콘돔’이라는 단어 그 자체에 대한 규제는 콘돔이 성인용품이라는 인식에서 파생될 확률이 높으며, 이러한 인식은 일부 특수 콘돔이 청소년유해물건으로 지정되어있는 현재의 고시사항과 무관하지 않다.

애초에 감상적인 이유 외의 객관적 증빙 없이 유해성을 단언한 것부터가, 콘돔을 섹스와 직결시켜 사고하는 발상은 의료기기로서의 필요성과 피임기구로서의 중요성을 손상시킨 것부터가 고시 목적에 부합하지 않지만, 설사 해당 고시가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한들 청소년이 피임없이 성관계에 임하는 비율이 이다지도 높은 상황에서, 해당 고시가 예방하는 문제보다 해당 고시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더 큰 상황에서 개정의 필요성은 지극히 당연하다. 해당 고시는 20년이 넘도록 청소년의 콘돔에 대한 접근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제정된 법이 오히려 청소년을 비보호의 영역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 성교육이 대부분 10대에 그치는 우리나라에서, 성인이 되면 콘돔 사용률이 갑자기 증가할지도 의문이다. 피임은 습관이다. 청소년의 콘돔에 대한 접근성은 거시적으로 봤을때 성문화 전반을 개선하는 출발점이다.

헌법소원을 선택한 이유

본 헌법소원의 목적은 단순하다. 피임이 필요한 사람은 편안하고 안전하게 피임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청구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 할 것이다. 국민정서라는 것은 때때로 잔인하다.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를 설치한 이후에 특히 더 와닿았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장삿속에 애들 코묻은 돈 노린다’고 비난했고, ‘청소년의 성관계를 장려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피임에 대한 접근성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생식권리의 기본이다. 사용 여부는 권리의 보장과 무관하다. 그들이 비판해야 할 대상은 지금 당장에 단 한명의 비극이라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작은 단체가 아니라, 너무 복잡하고 어렵고 해결이 요원하다는 이유로 이 문제에 대해 너무나 소극적인 공적영역의 구성원들이 아닐까.

법이 문화를 선도하기도 하고, 문화가 법을 바꿔가기도 한다지만 때때로 헌법이 보장하는 것들이 그저 단어에 불과한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랜 싸움과 설득의 끝에도 겨우 주어질까 말까 소중하고 간절한 것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아야 한다.

ⓒ Gina Park

Produced by Eve condoms

“쾌락통제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이유”에 대한 1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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