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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에게 우편을 통해 무상으로 콘돔을 기부하는 FRENCH LETTER PROJECT를 다시 시작한지 2개월이 다 되어간다. 프로젝트를 재개하면서 콘돔이 보다 더 많이 필요한 청소년들에게는 간단한 인증을 거친 후 EVE 콘돔을 반값에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했는데,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 청소년들을 위한 비밀포장(부모님이 뜯어봐도 콘돔인지 모를 만큼 철저한 둔갑술이라거나…)이 완비되지 않은 터라 조금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몇일 전, 우리로부터 콘돔을 사간 청소년이 보내온 메일의 내용은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싸대기는 기본, 몽둥이는 옵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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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을 사갔던 그 학생이 보내온 메일의 일부이다. 요약하자면 아들이 콘돔을 샀다는 이유로 어머니는 청소년의 뺨을 내려쳤고, 아버지는 몽둥이로 멍이 들만큼 때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의 여자친구에게까지 연락하여 헤어질 것을 종용하였다.

내 아들의 성(性)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가 컸을 것이다. 혹시라도 책임지지 못할 일이 발생할까봐, ‘어린 날의 치기’ 때문에 자식이 앞날을 망칠까봐 걱정이 되서 극단적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비단 이 학생의 부모님 뿐만 아니라, 같은 상황이라면 다른 가정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질 확률은 사실 굉장히 높다.

아마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부모라면 미성년인 자녀의 성생활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해봤을 것이다. 우리 애가 섹스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다. 당연히 안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청소년의 성(性)은 없다. 그래서 미성년자가 콘돔을 샀다는 사실이 뺨을 후려치고 죽도록 때릴만큼 나쁜 일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기성세대가 제작한 성교육 자료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다.

2012년 여성가족부에서 실행한 청소년유해환경접촉실태조사를 살펴보면 기성세대가 가진 청소년의 성에 대한 인식을 보다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일단 성관계나 성적인 접촉이 유해행동에 포함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무려 흡연·음주·환각성물질 사용과 동일한 선상에서 유해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감히 청소년이 접해서는 안될 영역에 성(性)이 있고, 그렇기에 그들에게 청소년의 성적 권리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현재의 성교육은 성적 자결권(自決權)을 보조할 수 있는 주체성 확립과 도덕적 바탕에 있지 않고, 청소년과 성생활을 분리하기에 급급하다.

 

그들은 몇년 뒤 성인이 된다

위에서 언급한 동일한 조사에 따르면 성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의 평균 첫 성경험 연령대는 남성 청소년이 15.2세, 여성 청소년이 14.7세으로 집계되었으며, 섹스를 하는 청소년들의 24.1%은 임신을 하거나 임신을 시킨 경험이 있었다. 활용가능한 피임도구를 알고 있다고 대답한 청소년은 전체의 26%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은 몇년 뒤 성인이 된다.

성교육을 필요로 하는 대상은 비단 청소년 뿐만이 아니지만, 10대 이후로는 직장 내 서폭력 예빵교육 등의 법정필수이수 교육 외에 성교육을 받을 기회는 사실 거의 전무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재로는 성인이 된 이후 섹스를 한다고 해도, 청소년은 성에 있어서 동등하게 대해질 필요가 있다. 성이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에 걸쳐 안고 가는 삶의 일부이다.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성관계를 맺고 안 맺고는 개인의 선택이며, 진정한 성교육은 그러한 선택을 보조할 수 있는 맥락을 제공하고 상대와 나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보호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성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간접적으로 암시된다. 콘돔을 구매한 자녀를 무조건 나무라는 것은 보호가 아니라 외면이다. 원치 않은 임신과 성병은 물론 지양해야한다. 그러나 이는 애초에 청소년기의 섹스에만 해당되는 리스크가 아니며, 특히 성인이 된 이후 알아서 성생활을 해야하는 우리 사회에서라면 청소년기의 습관과 가치관은 더욱 중요하다. 청소년의 섹스보다 오히려 막연한 호기심 만을 가진 성인이 더 위험하다. 결혼하기 직전에 아들딸을 앉혀놓고 ‘이제 섹스해도 돼’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면, 청소년을 성으로부터 무조건 격리시키는 것은 성에 대해 무지한 성인을 낳는 일이다.

섹슈얼리티의 인정

피임 교육은 성교육이 취할 수 있는 여러 형태 중 하나이다. 실제로 성교육의 핵심은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죽을때까지 안고 가는 성(性)이라는 것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청소년은 안돼’라던가 ‘결혼 전에는 순결을 지키는 것이 옳은거야’와 같이 개인의 선택은 배제하고 사회적 관습만을 강요하는 방식은 하잘 도움이 안된다. 콘돔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콘돔을 제공하는 것이 먼저이고, 섹스를 하는 사람에게는 피임이 필수이다. 간단한 일이다.

청소년에게도 성(性)이 있고, 섹슈얼리티가 있으며, 그것에 대한 주체적 권리가 있다. 이 사실부터 인정하지 않으면 성에 대한 개인의 가치관은 성립할 수 없다. 청소년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햇다고 해서, 인격적 독립체가 아닌 것은 아니다. 혼전순결을 지키든, 활발한 성생활을 하든, 동성애를 하든, 이성애를 하든 결국 그 선택은 개인이 자신의 성향과 가치관에 입각하여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 간이라고 해도 개인과 개인 사이의 대등한 대화를 넘어선 일방적 강제와 억압은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퉁 칠 수 있는게 아니다.

 

콘돔을 나눠주는 이유

콘돔을 샀던 그 청소년에게는 정말 미안한 마음 뿐이다. 그가 보내왔던 메세지는 청소년의 성적 권리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철저하게 짓밟히고 있는지 여실히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고, 암암리에 콘돔을 주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지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이라도 우리의 작은 소셜 프로젝트로 인해 콘돔이라는 건강한 피임 습관을 들이게 된다면 계속 진행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당장에는 어떻게든 콘돔처럼 안보이게 둔갑시키는 방법을 더 연구해보아야 겠지만 말이다.

예전에 한 대안학교의 보건교사에게 교내 보건실에 콘돔을 비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얄팍한 상술을 펼치려고 드는 천하의 나쁜놈 취급을 받았었고, 대화의 여지조차 남겨두지 않는 상대측의 완고한 태도로 결국 비치할 수 없었다. 그때의 그분에게 이 글을 헌정하고 싶다.

당신은 청소년을 무슨 시한폭탄처럼 여기고 성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서 그들을 보호한다고 믿겠지만, 사실 당신의 책임을 떠나 성인이 된 이후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피임도구인 콘돔조차 접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도대체 어떤 이점이 있는지 묻고 싶을 따름이다. 섹스를 하고 안하고는 타인이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있으며, 성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피임도구를 제공하는 것과 무조건 아직 어려서 안된다고 말만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불필요한 비극을 막는 데에 더 효과적일지 스스로 고민해보시길 바란다.

글쓴이

EVE

안녕하세요? 건강과 자연을 생각하는 이브입니다.

“콘돔을 구매한 그는 싸대기를 맞았습니다”에 대한 1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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