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님 칼럼 [학생이 어디서 연애를 해(2)]
2018년 03월 28일 작성

10대인턴 나민님 콘텐츠 #6 칼럼 [학생이 어디서 연애를 해(2)]

 


 

학생이 어디서 연애를 해

 

“학생이 어디서 연애를” 이라는 말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이 말은 무엇을 목격했을 때 내뱉어질까? 대체로 손잡는 것, 어깨 기대는 것, 포옹하는 것, 과 같은 특정 신체 접촉을 보았을 때 나오는 말일 것이다. 학교가 학생에게 ‘연애 금지’ 라는 교칙을 주장할 때를 떠올려 보면, 금지하는 것은 사실상 손잡는 것, 어깨 기대는 것, 포옹하는 것, 과 같은 신체 접촉에 대한 것들이다. 이처럼 우리는 특정 신체 접촉이 “연애” 라고 인식되는 상황을 자주 맞닥뜨린다. 그렇다면. 학생과 신체접촉은 무슨 관련이 있기에 한데 묶여 호통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문장을 하나 더 끌어와야 한다.

우리가 연애를 하는 사람에게 가장 많이 쓰는 말 중에 하나는 “너 걔랑 진도 어디까지 나갔어?” 일 것이다. 우리는 ‘진도’ 라는 개념에 익숙한데, 이는 신체 접촉에 있어서 어떠한 단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내포한다. 이 진도를 부르는 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1부터 10이 있는데 너 걔랑 어디까지 했냐. 참고로 5는 손으로 해주는 거다. 같은 말부터 시작해서 100일이 넘도록 아직 뽀뽀도 못해봤다고? 라는 말들이 대표적인데, 우리의 인식 속에는 공공연하게 ‘손잡기- 포옹하기- 뽀뽀하기- 키스하기- 섹스하기’ 라는 단계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단계가 전제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선행되어야 하는 때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100일이 지나도 아직 뽀뽀도 못해봤다고? 라는 말을 보라. 혹은 만난 지 3일 만에 키스했어. 우리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와 같은 말들. 한번쯤은 들었거나, 설렁 직접 듣지는 못했어도 대사나 문장으로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말들은 전부 단계에 적당한 때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 적당한 때의 기준은 만난 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이이기도 하다. 성관계를 가져본 청소년들 중에서 평균 성관계를 가져 본 나이가 13살 언저리라는 말에 어쩌기도 전에 ‘헉’ 하는 반응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 ‘때’ 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연애를 둘러싼 규정들은 너무도 견고하다. 특정 단계, 특정 때만이 정상적인 수순이라 여겨지는 모습은 그 다른 어떤 모습을 상상할 수 없도록 만든다.

특정한 모습만이 정상적인 것이라는 그 빈곤한 상상력은, 규정된 정상성 속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쉬이 ‘정상적이지 않은 자’ 라고 치부한다. 이 시점부터 ‘죄 없는 자만이 돌을 던져라’ 라는 성찰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때와 단계로 규정된 정상성이 명확하게 있기 때문에 그 정상성 바깥에 있는 자들 역시 너무도 명백하게 죄인이라 여겨진다. 그렇게 인터넷 댓글창에서, 일상생활에서, 매체들의 대사에서, 규정지어진 정상성을 맹신하는 모두는 쉽게 쉽게 돌을 들어 그 정상성과 어긋난 자들을 고민 없이, 가차 없이 내리 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학생이 어디서 연애를 해” 라는 호통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때가 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학생은 ‘신체 접촉’ 에 대한 그 어떤 이해도 인식도 문제의식도 나누지 못한 채 ‘연애 금지’ 라는 교칙 속에서 ‘무성의 존재’ 가 된다. 학생들이 성에 대해서 내제화하는 경험은 성에 대해 ‘순수하고 무지한’ 존재로서 살아가기를 요구받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학생이 ‘일탈적’ 이라 질타 받는 과정뿐이다. 오로지 신체 접촉만이 연애로 인식되고, 그러한 신체 접촉에서 유예된 ‘미성년자’ 는 섹슈얼리티와 생식과정을 숙고할 기회를 잃는다. 성적인 담론에 대한 자신의 시각, 상호존중에 대한 중요성 등을 배우지 못한 채 성인이 된 자들은 연애를 그저 매체에서 보아온 관계와 왜곡된 성행위를 흉내 내는 데 그치고, 그렇게 오늘날 ‘데이트 강간’이나 ‘이별살인’은 점점 늘어만 가는, 바야흐로 참담한 참사가 너절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편협한 인식이 불러온 이러한 참사를 제발 좀 보라고 소리치고 싶다. 성에 대해, 연애에 대해, 학생에 대해 규정하는 모습들에게, 보아온 게 늘 그런 통념 속의 모습이라 그것밖에 답습할 줄 모르는 건가, 라고 조소하기엔 그 답습이 정상성이랍시고 규탄할 권리를 진 채 으스대는 꼬라지가 너무 만연해졌다. 무관한 상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비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성을, 연애를, 학생을 규정하는 그 답습이 정상성의 가면을 쓰고서 소꿉장난 할 때의 작은 칼로 역할극에 임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휘둘러 찌를 수 있는 칼을 가지고 심취해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동안은 그 기고장만한 규정에게 실제로 극심한 상처를 낼 수 있는 칼을 조심해서 쓰라고 어르고 달랬지만, 그 당부가 자신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는지 언젠가부터 휘두르는 칼의 위험을 알면서 날뛰는 규정들이 정말로 꼴도 보기 싫어, 이제는 부디 조심하라는 어르고 달램을 그만 두고, 잔뜩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만큼 했으면 이제 역할극에서 빠져나올 때가 되지 않았니. 그만 좀 설치고 정상성이라고 쓰인 그 가면 좀 벗지.

 

@Namin 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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