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님 칼럼 [너네 좀 떨어져]
2018년 03월 28일 작성

10대인턴 나민님 콘텐츠 #8 칼럼 [너네 좀 떨어져]

우린 삽입 섹스 외의 섹스를 상상할 줄 알아야 한다.
분명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상상으로 더 많은 감각과 생활과 생각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너네 좀 떨어져

 

연애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는, “너네 좀 떨어져.” 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마치 농담처럼 남용되며, 응당 연인이라면 이 말을 감수해야 한다는 듯, 동시에 너네 사이가 좋다는 칭찬도 포함되어 있다는 듯, 들을 때마다 어딘가 떨떠름한 느낌을 주곤 했다.

손을 잡고 있든, 끌어안고 있든, 같이 앉아 있든, 이 말의 사용 범위는 굉장히 넓어서 정말로 아무 때나 아무 장소에서 툭툭 내 뱉어지는데, 이 무분별함은 무엇을 전제하고 있을까?

 

“너네 좀 떨어져.” 라는 말은 연인들 사이의 스킨십에 대한 인식이 너무도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을 내포한다. 누군가는 손을 잡고 있는 연인을 보고 이 말을 외치고, 누군가는 입을 맞추고 있는 연인을 보고 이 말을 외친다. 즉, 이 말은 오로지 타인의 관점에서 판단되어 나오며, 신체적인 접촉이 없더라도 그저 연인 사이의 둘이 함께 있기만 한다면 이질감 없이 사용된다, 이는 결국 연애를 하고 있는 두 주체들에 대한 인식은 아무것도 필요 없이, 그저 그 연애를 바라보고 있는 타자의 상상으로 인해 행위의 정도가 무분별하게 제한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학생 연인이라면 더더욱 이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흔히들 걱정하는 그들의 ‘미성숙’으로 하여금 혹시 모를 미연의 상황을 방지하고자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예전에 길거리에서 끌어안고 있는 학생 연인에게 어떤 할아버지가 ‘시퍼렇게 어린 년놈들이!’ 라며 역정을 내며 달려갔다는 일을 들었다. 그것도 그 말을 하려고 반대편 길거리에서 허겁지겁 뛰어오셨단다. 그 학생 연인은 내 친구이자, 언젠가의 내 모습이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임에도 ‘학생 연인’을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 대해서 발화하고 규정할 권리가 생긴다는 인식은 어디서 튀어나온 몰지각일까?

 

보다 아니꼬운 지점은 그러한 주의를 연인이라면 ‘응당’ 받아들여야 함이 요구되는 상황에 있다. 왜 연인이 함께 있기에 적합한 ‘일정한 거리’의 정도에 대해 타인이 뭐라 하는 것을 수긍하며, 우리가 연인이기 때문에 저런 말을 듣는 것은 당연하다는 태도로만 이 문장에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까닭은 단순하다. 우리도, 우리를 보는 타인도, ‘연인’ 이라는 관계는 서로의 성적인 부분에 대한 합의지점이 이미 ‘섹스하기’ 까지 전부 종결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연인이 되기를 결심한 ,“우리 오늘부터 1일이다.” 그 순간부터, 둘은 별다른 합의나 대화를 하지 않아도 이미 서로의 성적인 지점에 대한 합의가 마쳐져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아마도 이 대목에서 “그게 뭐가 문제야?” 라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둘이 사귀는 데 어떻게 강간이라고 할 수 있어?” 라는 아둔한 목소리들과 앞서 “시퍼렇게 어린 년놈들이!” 라고 역정을 낸 할아버지가 좋은 근거다.

 

연인이 되는 순간 종결된 합의인 ‘섹스’를 바라보는 시선을 살펴보면, 그 시선은 삽입 섹스만이 섹스라고 여기며 그 외의 섹스의 존재를 상상하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삽입 섹스만이 섹스라고 인식되는 것의 전부인 자들의 세계에선 ‘아직 몸이 덜 자란’ 미성년자에게는 섹스라는 것이 허용될 수 없고(미성년자에게 섹스는 없으니 – 이 어린 년놈들아! 라는 사고가 가능할 것이다.) 몸이 다 자랐음에도 조루나 발기 부전을 겪는 자는 마땅히 놀림거리 취급을 해도 무관하고, 삽입을 보다 잘 할 수 있는 건강한 성기에 대한 자부심이 성기의 크기가 쉬이 권력으로 이어지고, 발기부터 사정까지 모두 섹스를 가능케 하는 남성 성기가 섹스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여겨진다. 결국 삽입 섹스에서 인식되는 것은 ‘남성 성기’ 뿐이며 결코 거스를 수 없도록 인식되기에 상대의 욕구와 요청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모로가도 삽입만 하면 장땡인 식이다.

 

하지만 삽입 섹스 외의 섹스의 존재를 불러올 수 있는 자들의 세계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성적 행위가 성기에 국한되지 않기에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여러 신체 부위가 인식되고, 마땅히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감각을 느끼고,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결코 강권이나 강유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 부부라서, 연인이라서 억지로 삽입하는 게 괜찮다는 몰지각은 존재할 수 없다. 존중과 이해, 애정 어린 호기심으로 나의 몸과 너의 몸의 맥락을 인식하게 될 것이며 개개인의 몸은 뭉뜽그려진 ‘몸’ 이 아님을 알기에 특정 성별의 특정 부분만이 부각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삽입섹스 외의 섹스가 어디있어, 라며 이미 마쳐진 합의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하고자 하지 않는 태도는 더 많은 이해와 더 친밀한 관계와 더 다양한 감각을 꺾어버린다. 그렇게 합의 외의 지점을 상상할 수 없게 함과 동시에, 서로의 욕망과 서로의 섹슈얼리티에 집중할 필요가 없도록 만든다. 개인의 욕망은 사라지고, 통념이 요구하는 신음 소리, 통념이 요구하는 체위, 통념이 요구하는 반응, 통념이 요구하는 감각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몸도 욕망도 생각도 모르는 연인들은 상대에게도 몸과 욕망과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와 당신의 몸’은 고려 대상도, 이해 대상도 아니기에 그렇게 그냥 통념만 흉내 내며,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덮는다. 압사당한 서로는 무엇이 자신들의 목을 조르는지 모른 채, 계속해서 결핍 속을 향유한다.

 

그러니 우린 삽입 섹스 외의 섹스를 상상할 줄 알아야 한다. 만약 누군가 상상이 지나치다고 팔짱을 낀다면, 지나친 건 ‘시퍼렇게 어린 년 놈들아.’ 과, ‘사귀는 데 무슨 강간이야!’ 와 같은 말들이지, 이 상상이 아니다. 우린 삽입 섹스 외의 섹스에 무지했기에 가물어 메마른 상상력을 더 일궈야 한다. 분명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상상으로 더 많은 감각과 생활과 생각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Namin Kwon

Produced by 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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